항목 ID | GC04204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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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塘洞- |
영어의미역 | Temple Site in Yongdang-dong |
이칭/별칭 | 용당동 폐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산5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조원영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위치]
용당동 절터는 홍곡산의 북동쪽 구릉의 경사진 곳에 위치하며, 석포여자중학교의 서북쪽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용당동 절터는 공동 주택을 건설하기에 앞서 경남문화재연구원이 구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고려 시대의 건물 터 3동, 담장 터, 축대, 추정 온돌 시설, 배수로, 석축, 석렬, 기와 가마터, 수혈 유구, 폐기장, 민묘 등이 조사되었다. 유물로는 토기, 기와류, 청자, 분청사기, 백자, 토제품 등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특히 기단 석렬에서는 암키와의 배면에 ‘◯수사(◯守寺)’와 ‘월천사(月天寺)’라는 절 이름이 확인되었는데, 두 기와가 태토와 소성도, 제작 기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현재로서는 절 이름에 대한 시기적 선후를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건물 터와 석렬을 중심으로 청자가 출토되었다. 청자의 기종은 발, 대접, 접시, 완, 잔, 마상배, 뚜껑, 매병, 병, 주자, 대반, 향완, 장고, 파수 등으로, 반상 기명인 대접과 접시의 출토 비율이 가장 높다. 번조 받침[태토 빚음]은 모래 받침보다 앞선 백색 내화토와 모래 섞인 내화토 빚음의 출토량이 높아서 용당동 절터의 중심 시기를 11~13세기로 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규석을 사용한 고급 접시 두 점도 확인되었다.
문양은 음각 기법으로는 연판문(蓮瓣文)을 새기고, 압출 양각 기법으로는 연판문, 포도문(葡萄文), 국화 당초문(菊花唐草文) 등을 새겨 놓았다. 상감 기법으로는 봉황문(鳳凰文), 국화문(菊花文), 여의두문(如意頭文), 연당초문(蓮唐草文), 뇌문(雷文), 운학문(雲鶴文), 연주문(蓮珠文), 모란 당초문(牡丹唐草文), 당초문, 여지문, 우점문(雨點文), 모란 절지문(牡丹折枝文), 화훼문(花卉文) 등이 다양하게 흑백 상감되었다. 특히 철화 기법으로 초화문(草花文)을 새겼는데, 이러한 초화문이 새겨진 대접은 양산 물금 가촌리 유적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며, 진해 태평동 가마터에서도 생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초화문이 새겨진 대접을 비롯하여 대접과 접시에서는 조질로 분류되는 청자들이 출토되었는데, 이것 또한 진해 태평동 가마터의 관련성이 엿보인다. 양질의 청자로는 모란 당초문과 봉황문을 상감하고 규석을 받친 고급 접시와 함께 강진에서 생산된 포도문과 국화 당초문 청자편이 출토되었다.
[현황]
현재 용당동 절터에는 주택 건설 공사를 하여 신대연 코오롱 하늘채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고지도 및 문헌 기록에는 용당동 절터와 관련된 기록이 없으나, 절 이름이 표기된 명문 기와와 고급 청자가 출토된 점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부산 지역 사찰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