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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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時代-對中交流 |
영어의미역 | Korea-China Exchanges in the Joseon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조선 후기에 동래의 왜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중국과의 간접적인 교류 활동.
[내용]
조선 시대에 동래 지역이 중국과 직접 교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 교류가 가능하였다. 조선 후기에 조선이 청(淸)과 교류하는 통로는 사행(使行)[사절]이었다. 조선에서 명(明)에 가는 사절을 조천사(朝天使)라 한 데 비해, 청에 가는 사절을 연행사(燕行使)라 불렀다. 조선 후기 동래 왜관에서 이루어진 대일 수출품은 주로 중국산 비단실[생사(生絲)·백사(白絲)]과 비단이었고, 수입품은 일본산 은(銀)이었다. 수입된 일본산 은은 중국산 비단실, 비단과 교환되었다. 청과의 무역은 조선 사절단이 매년 베이징[北京]을 오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사행 무역이 핵심이고, 무역을 주도한 이들은 역관이었다.
대청 사행은 정기 사행과 임시 사행으로 구분된다. 정기 사행은 정례화된 삼절연공행(三節年貢行)과 황력재자행(皇曆賫咨行)이다. 삼절연공행은 삼절행과 연공행을 합한 것이다. 삼절행은 동지행(冬至行), 신년 하례하는 정조행(正朝行), 황제 생일을 축하하는 성절행(聖節行)이다. 연공행은 세폐(歲幣)를 내는 사행이다. 삼절행과 연공행이 통합된 것은 청이 베이징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1645년(인조 23)이다. 삼절행은 보통 통지행으로 기록되어 있다. 황력재자행은 청의 책력을 받아 오는 사행으로 황력행, 역행, 역자행이라고도 부른다.
동래 왜관을 통해 수입된 일본산 은은 사행에 따라 중국으로 매년 2회 이동하였다. 역자행은 8월에 한성을 출발하여 베이징에 머문 후 11월에 귀국하였다. 동지행은 11월에 한성을 출발하여 신년 하례 등 의례를 마친 후 이듬해 4월에 귀국하였다. 역자행이 가지고 가는 은을 황력은(皇曆銀), 동지행이 가지고 가는 은을 동지은(冬至銀)이라고 부른다.
대마도(對馬島)는 동래의 왜관으로 은을 수송하기 위하여 은선(銀船)이라는 전용선을 사용하였다. 이 은선의 활동은 달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7~8월과 10~11월의 4개월 동안에 연간 수송량의 60% 이상을 수송하였다. 황력은은 7~8월에 대마도에서 동래의 왜관으로 수송된 후 8월에 역자행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동지은은 10~11월에 대마도에서 동래 왜관으로 수송된 후 11월에 동지행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처럼 동래 왜관의 중개 무역을 통해 생산지 일본에서 소비지 중국으로 가는 은의 흐름은 조선에서 청으로 가는 사행의 파견 시기와 연동되어 있었다.
중국 사행이 귀국한 지 2~4개월 후면 수입된 중국산 백사와 비단은 동래의 왜관으로 운반되었다. 이 물건들은 대마도를 거쳐 다시 일본 최대의 비단 산업 지대인 교토로 들어갔다. 교토 니시진[西陣]에서 짜는 고급 비단의 원료는 중국산 백사다. 교토는 은길의 출발지인 동시에 비단길의 종착지였다. 일본의 은과 중국의 생사·비단은 동래 왜관 개시 대청에서 이루어진 개시 무역[사무역]을 통해 환류하고 있었다. 17세기 말 일본 측 자료를 보면 동래 왜관을 통한 수출 무역품 가운데 중국산 백사가 50%, 중국산 비단이 26%로 중국산 물품이 약 80%를 차지한다. 비단의 길과 은의 길을 만나게 하는 연결 고리 구실을 한 곳이 동래 왜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