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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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福善 |
영어음역 | Gim Bokse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경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복선(金福善)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1 운동 발발 직후 서울의 학생 대표가 부산으로 와서 부산 지역의 학생 대표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에 나서도록 북돋았다. 이때 부산진일신여학교도 연락을 받고 의거를 서두르게 되었다.
김복선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봉애(金奉愛), 고등과 3학년 김응수(金應守), 고등과 2학년 김난줄(金蘭茁)·김신복(金新福),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과 더불어 시위 항쟁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을 시위 일자로 정하고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준비하였다.
3월 11일 김복선은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좌천동 일대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복선은 다른 주동자들과 함께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1919년 3월 김봉애 등 부산진일신여학교 7회 졸업생들의 졸업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7회 졸업생들은 주경애·박시연 두 교사의 출옥을 기다려 이듬해인 1920년 봄에 8회 졸업생들의 졸업식을 먼저 치른 뒤에 두 교사와 함께 졸업식을 거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