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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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時代-家族構造 |
영어의미역 | Family Structure of the Joseon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경준 |
[정의]
조선 시대에서 한말까지 부산 지역의 가족 구조.
[개설]
조선 시대에서 한말에 이르는 동래 지역의 가족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유용한 자료로는 호적 대장, 호구 단자, 준호구와 같은 호적 문서를 들 수 있다. 동래 지역에는 현전하는 조선 시대 호적 대장은 없고, 신식 호적으로 불리는 『동하면 호적(東下面戶籍)』만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몇 몇 집안을 중심으로 가전되는 호적 문서가 많이 남아 있어 조선~한말 시기의 가족 구조의 대략을 살펴볼 수 있다. 1759년에서 1894년까지 작성된 경주 최씨 일가 호구 단자, 1732년부터 1867년까지 작성된 창원 구씨 집안의 호적 자료, 그리고 1908년 작성된 『동하면 호적』에 나타나는 동래 지역의 가족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주 최씨와 창원 구씨 집안의 호적 문서에 나타난 가족 구조]
경주 최씨 및 창원 구씨 집안의 가족 구조는 대체로 호주 내외와 미혼의 자녀들로 구성된 소가족을 기본 형태로 하고 있다. 자녀들이 혼인하여 호주 내외와 함께 거주하면서 점차 직계와 방계 가족의 형태로 바뀌다가 다시 혼인한 자녀들이 호주로부터 분가함으로써 기존의 소가족 형태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다수의 가족을 거느릴만한 경제력을 소유한 경우 자녀들이 혼인 뒤에도 분가하지 않고 그대로 방계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인근의 대구나 울산의 호적 대장에 나타나는 가족 구조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들에서도 직계 가족 보다는 부부 가족이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으며, 대체로 경제력이 높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양반층이 상민이나 천민층에 비해 직계 가족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두 집안의 통혼권을 살펴보면 어느 특정 집안에 집중되어 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이들 두 집안과 신분이 유사한 무임(武任)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어 신분 내혼(身分內婚)을 유지하려 한 흔적을 엿볼 수도 있다.
[동하면 호적에 나타난 가족 구조]
한편, 1908년에 작성된 『동하면 호적』에 나타나는 가족 구조를 살펴보면, 이전 시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하면 호적』에 등재된 392호 중에는 과부(寡婦)나 환부(鰥夫)의 경우처럼 동거 친속이 없는 가족 수 1명의 호가 12호[3.1%], 가족 수 2~7명인 호가 363호[92.6%], 그리고 가족 수 8명 이상 호가 17호[4.3%]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당시 동하면 주민의 가족 규모는 대가족 보다는 중소형 가족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의 결합 유형은 ‘부부+미혼의 자녀’ 또는 ‘부부’만으로 구성된 부부 가족(夫婦家族)이 전체의 60.2%로 대다수를 점유하고, ‘부모+자녀 부부’ 또는 ‘부모+자녀 부부+손자녀’로 구성된 직계 결합 가족도 37.2%를 차지한다. 반면에 방계 결합 가족은 2.6%로 대단히 미미하다. 가족의 결합 범위와 유형은 동하면 전체 호의 89.5%가 2~3세대 결합 형태를 보인다. 대다수 가족이 ‘부모+자녀’ 또는 ‘조부모+부모+자녀’의 형태로 결합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도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2세대 가족이 60.9%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