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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982
한자 梵魚寺石燈
영어의미역 Stone Lantern at Beomeo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조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범어사 석등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범어사 석등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성격 석등
크기 2.62m[높이]
소유자 범어사
관리자 범어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있는 석등.

[개설]

범어사 석등은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석등으로서 옥개석과 화사석(火舍石), 상대석, 간주석(竿柱石), 하대석이 모두 팔각형을 기본으로 한 통일 신라 석등의 전형적인 양식을 띤 유물이다. 한편 석등은 금당(金堂)이나 탑 앞에 놓이는데, 범어사 석등도 원래는 용화전(龍華殿) 앞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 때 범어사 종루(鐘樓)를 석등이 있던 자리로 옮기고 석등을 지금의 자리인 범어사 심검당(尋劒堂) 동쪽 편으로 옮겼다. 석등을 금당이나 탑 앞에 두는 것은 사람이 운명하는 순간에 등을 밝히면 삼종명(三種明)을 얻고, 죽은 자를 위하여 탑묘제불(塔墓諸佛) 앞에 등을 밝히면 삼십삼천(三十三千)에 태어나며 다섯 가지 청정(淸淨)을 얻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석등은 금당이나 탑과 함께 사찰의 중심부에 놓이며, 정성을 모아 조성되었던 것이다.

[건립 경위]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범어사 삼층석탑을 세운 지 3년 후인 678년(문무왕 18)에 만들었다고 하나, 석등의 양식을 보면 문무왕(文武王) 대에 제작되었다고는 믿기 어렵다.

[위치]

범어사 석등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안에 위치한다.

[형태]

범어사 석등은 부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석등으로서 3단의 받침 위에 불을 밝혀 두는 화사석과 옥개석을 올린 통일 신라의 일반적인 석등 형태로, 각 부재가 8각을 이루고 있다. 석등의 기단부는 간주석을 사이에 두고 하대석은 복련(覆蓮)의 연꽃 문양을, 상대석은 앙련(仰蓮)의 연꽃 문양을 새겨서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사면에 네모난 창을 두었는데, 창의 가장자리마다 창문을 달았던 10개의 구멍 흔적이 남아 있다. 옥개석은 여덟 곳의 추녀 끝이 모두 살짝 들려 있다. 옥개석 위에는 네모난 노반(露盤)을 놓고 그 위에 보주(寶珠)를 올렸다.

[현황]

현재 범어사 석등은 범어사 대웅전 석축 아래 중앙 뜰에 범어사 삼층석탑과 마주보고 서 있다. 석등의 서쪽에는 선방인 범어사 심검당이 있고, 남쪽에는 강당인 범어사 보제루(普濟樓)가 있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석등은 간주석이 빈약하고 기단 상대석은 두터워서 기단의 비례가 안정적이지 않다. 또한 상륜부의 부재들이 없어졌고, 옥개석 위에 얹힌 노반도 제짝이 아니어서 석등의 전체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남아 있는 화사석의 모양과 기단부 연꽃 문양의 양식으로 보아 9세기경 범어사가 크게 중창될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범어사의 역사를 알려 주는 의미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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