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92 |
---|---|
한자 | 徐月影 |
영어음역 | Seo Wolyeong |
이칭/별칭 | 서영관(徐永琯)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진 |
[정의]
부산 출신의 연극·영화배우.
[활동 사항]
서월영(徐月影)[1904~1973]의 본명은 서영관(徐永琯)이다. 1903년 4월 8일 부산에서 태어나 일본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귀국 후 1925년에 극단 토월회에 신인 배우로 입단하였고, 조선배우학교 1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27년 「불망곡」으로 영화에 데뷔하였다. 그 후 동양 극장 전속 극단인 청춘좌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1937년 청춘좌를 탈퇴하고 중앙무대를 창설하였다. 1939년에는 극단 고협에서 활동하다가, 8·15 광복 후에는 극단 청탑을 창설하였다.
1948년 당시 부산의 제7관구청[미군정 때의 경상남도 경찰국] 공보실의 후원으로 부산의 신인 배우를 발탁하여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 「여명」에서 서월영은 주연을 맡았다. 「여명」은 그해 7월 1일 부산의 조선 극장[후에 동아 극장]에서 전국 최초로 개봉되었다. 1956년에 서월영은 영화배우협회 부회장을 지내는 등 연극과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1959년 국립 극장 전속 단원을 마지막으로 서월영은 영화에만 전념하였다. 준수한 외모와 중후한 연기로 많은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으로 활약한 서월영은 1973년 2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출연 영화로는 「불망곡」·「운명」[1927]·「지나가의 비밀」·「나의 친구여」[1928]·「바다와 싸우는 사람들」[1930]·「밝아가는 인생」·「아름다운 희생」[1933]·「바다여 말하라」[1935]·「처녀도」·「새 출발」[1939]·「반도의 봄」[1941]·「흙에 산다」[1942]·「우르러라 창공」·「조선해협」·「젊은 모습」[1943]·「거경전」[1944]·「수우」·「여명」[1948]·「푸른 언덕」·「성벽을 뚫고」[1949]·「최후의 유혹」·「청춘」[1953]·「고향의 노래」[1954]·「열애」·「제이의 출발」·「춘향전」[1955]·「단종애사」[1956]·「시집가는 날」·「장화홍련전」·「처녀별」·「사도 세자」·「애인」·「천추의 한」·「교차로」·「벼락감투」[1956]·「아리랑」·「청실홍실」·「나는 너를 싫어한다」[1957]·「마음의 진주」·「비련의 섬」·「검사와 여선생」·「님은 가시고」·「돈과 시간을 달라」[1958]·「춘희」·「한말 풍운과 민충정공」·「이름 없는 별들」·「왕자 미륵」·「동심초」[1959]·「흙」·「인정 부두」·「두 여인」[1960]·「성춘향」·「구봉서의 벼락부자」[1961]·「겨울 나그네」·「사명당」·「한석봉」·「차이나타운]」·「정복자」[1963]·「포리호의 반란」·「목단등」·「벙어리 삼룡」·「천안 삼거리」[1964]·「청일 전쟁과 여걸 민비」·「순교자」·「태조 이성계」·「대석굴암」[1965]·「서울 머슴아」[1966]·「꿈」·「수라문의 혈투」·「공주님의 짝사랑」·「다정불심」[196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