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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경 무과홍패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24
한자 趙瑞卿武科紅牌
영어의미역 Written Appointment for Jo Seogyeong, Winner of Military Service Examination
이칭/별칭 「조서경 무과 급제 홍패 왕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1동 1394-2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신명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급 시기/일시 1435년 4월 20일연표보기 - 조서경 무과홍패 발급
문화재 지정 일시 1988년 6월 16일연표보기 - 조서경 무과홍패 보물 제95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조서경 무과홍패 보물로 재지정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발급처 조선 국왕 - 서울특별시
수급처 조서경 - 서울특별시
발견|발굴처 조성욱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조숭|조하
용도 합격 증서
발급자 세종
수급자 조서경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1동에 거주하는 조서경(趙瑞卿)의 후손이 소유한 세종 대의 무과 급제 증명 왕지.

[개설]

1392년(태조 1) 조선 왕조가 건국한 후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을 거치지 않고 왕명만으로 직접 관료들을 임명하는 관교(官敎)를 사용하였는데, 이때의 관교는 ‘왕지(王旨)’라는 문구로 시작되었기에 왕지로 불렸다. 1442년(세종 24) 기왕의 왕지는 모두 ‘교지’로 바뀌었고 그 문서 양식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렸다. 조서경 무과홍패(趙瑞卿武科紅牌)는 조선 건국 후의 왕지 양식에 입각해 작성된 무과 급제 증명서로, 1988년 6월 16일 보물 제95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조서경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다. 할아버지는 조숭(趙崇), 아버지는 조하이다. 조서경은 1435년(세종 17)에 치러진 을묘 식년(乙卯式年) 무과 시험에 응시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을묘 식년 무과는 1435년 4월 17일에 후원에서 시험이 치러지고, 이어서 4월 18일에 모화관에서 격구 시험이 치러진 후 4월 20일에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따라서 본 조서경 무과홍패는 1435년 4월 20일의 합격자 발표 때 발급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형태]

모두 6행에 걸쳐 초서로 쓰였으며, 연월 뒤에 ‘국왕 신보(國王信寶)’가 찍혀 있다. 첫 행에 ‘왕지’ 두 글자가 단독으로 위치하고, 이어서 행을 바꾸어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이 4행에 걸쳐 적혀 있다. 두 번째 행의 첫 글자는 첫 행의 지(旨) 자와 거의 나란히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행에는 본 문서가 발급된 연월일이 적혀 있다. ‘국왕 신보’는 연호와 연도에 걸쳐져 찍혀 있는데 크기는 사방 10㎝이다.

[구성/내용]

「조서경 무과 급제 왕지」의 내용을 작성 형태에 따라 번역, 탈초하면 다음과 같다.

“왕지. 전 조위의부위 우군 부사정 조서경은 무과 3등 급제 출신자이다. 선덕 10년(1435) 4월 20일[王旨. 前朝議副尉右軍副司正趙瑞卿武科三等及第出身者 宣德十年四月卄日]”

위의 전조의부위 우군 부사정(前朝議副尉右軍副司正)은 조서경이 무과에 합격하기 이전에 역임한 관직 이름이다. 무과 3등은 조서경의 무과 합격 석차이다. 1435년의 무과 시험에서는 무경 칠서(武經七書)와 마보(馬步) 무예에 정통한 자를 1등, 이가 병서(二家兵書)에 마보 무예에 능통한 자는 2등, 마보 무예에만 능통한 자는 3등을 삼았다. 당시 조서경은 마보 무예에만 능통한 것으로 평가받아 3등으로 합격하였다.

[의의와 평가]

1435년 4월 20일에 발급된 조서경 무과홍패는 조선 시대의 과거 합격증서가 홍패로 바뀌기 이전 단계의 관료 제도 및 과거 제도 연구의 중요 자료이자 조선 시대 보인(寶印) 사용의 변천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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