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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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永勳去思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Honoring the Beneficient Government of Min Yeonghun |
이칭/별칭 | 부사 민공영훈 거사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무학송로 13[부곡2동 25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명호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2동에 있는 조선 후기 동래 부사 민영훈(閔永勳)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문과방목(文科榜目)』에 의하면 민영훈은 1775년(영조 51)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민종길(閔種吉)이다. 1835년(헌종 1) 9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2년 만인 1837년(헌종 3) 3월 이임하였다. 비는 1838년(헌종 4) 봄 민영훈이 동래 부사에서 교체된 지 1년 만에 세웠다.
[위치]
민영훈 거사비(閔永勳去思碑)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2동 255번지 대우 아파트 앞 산업 도로에서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로 가는 골목길에 있다.
[형태]
비석은 몸돌과 받침돌로만 간단하게 이루어져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223㎝, 너비 72㎝, 두께 42㎝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부사 민공영훈 거사비(府使閔公永勳去思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둔전을 설치하여 ……를 없애 만인의 목숨을 살렸으니 백세 뒷날까지 노래하리라. 삼동구관 유학 정윤화[府使閔公永勳去思 洒□洒 設屯祛□ 活萬人命 百世歌詠 三洞句管幼學鄭潤和]”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천 포대의 쌀을 내어 만인의 목숨을 살렸다. …… 삼동에 ……하여 사객을 맞는 폐단을 없앴다. ……돌아가시니 읍민들이 비석을 세웠다. ……민심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청하여……. 숭정 기원 후 네 번째 무술년 늦봄 이지…… 삼가…… 유학 문…… 도감 유학 박내영……[□□□□□□□□□歉損千包米活萬人命防□ □□□□□□□□□□□□於三洞以除使客迎 □□□□□□□□□□□□□旣歸邑民竪碑□ □□□□□□□□□□民心於斯可得見村人請□ 崇禎紀元後四戊戌暮春李之□謹□ □□幼學文□□都監幼學朴乃英監官司]”이라고 되어 있다.
[현황]
비문이 상당 부분 마모되어 판독되지 않는 글자가 많다. 부산광역시에서 소유하여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민영훈 거사비는 19세기 동래 부사로 재직한 민영훈의 선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금석문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