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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경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802
한자 盧泳敬
영어음역 No Yeonggyeong
이칭/별칭 흠재(欽齋),문간(文簡)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망덕봉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변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광주
대표관직 좌부승지
활동 시기/일시 1877년 - 문과 별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82년 - 기주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4년 -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5년 - 동부승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90년 - 경주부 윤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92년 - 좌부승지에 임명
출생지 동래부 - 부산광역시
거주|이주지 동래부 - 부산광역시

[정의]

개항기 동래부 출신의 문관.

[가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경함(景咸), 호는 흠재(欽齋). 선조(宣祖) 대에 이조 판서를 지낸 노수신(盧守愼)의 후손으로 증조 할아버지는 노상원(盧尙元)이고, 할아버지는 노흥문(盧興文)이며, 아버지는 노광종(盧光鍾)이다. 어머니는 김성구(金聖玖)의 딸이다.

[활동 사항]

노영경(盧泳敬)은 동래 출신으로, 1877년(고종 14)에 문과 별시(文科別試)에 병과(丙科) 18등으로 급제하였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기주관(記注官)으로서 임금을 호위하여 궁 후원(後苑)으로 모셨고, 왕명을 받들어 반란 군졸들을 설득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임금이 환궁할 때는 홍문관 부교리로서 호위하였다. 이듬해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었고, 1888년(고종 25) 안변 부사로 나갔다. 1890년(고종 27) 경주 부윤으로 옮겼으며, 1892년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임명되었다. 임금이 갑신정변 때의 일을 떠올리며 특별히 음식을 내리고, 동궁에서도 고기와 과일을 보내 노모에게 드리도록 하였다. 그해 가의대부 특진관(嘉義大夫特進官)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된 후 여러 차례 조약을 폐기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자 고향에 내려가 은거하며 경학(經學) 연구에 몰두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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