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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22
한자 秋鍾燁
영어음역 Chu Jongyeop
이칭/별칭 소강(小岡),내순(乃舜)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은행가|교육자
성별
본관 추계(秋溪)
대표경력 동래은행 두취
출생 시기/일시 1874년 11월 12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9월 - 경릉(敬陵) 참봉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월 - 수면노소신사총회 수석 회원
활동 시기/일시 1907년 2월 - 사립 정정의숙 설립 찬조
활동 시기/일시 1907년 5월 - 재일본 단지(斷指) 유학생 학자금 모집 찬조
활동 시기/일시 1911년 5월 - 부산부 봉래일기계 발기인
활동 시기/일시 1918년 - 동래은행 취체역 전무[전무 이사]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동래은행 취체역 두취[대표 이사]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민립 대학 설립 발기인
활동 시기/일시 1924년 12월 - 동래기영회 입회
활동 시기/일시 1940년 2월 - 재단법인 구산학원 설립 발기인
활동 시기/일시 1940년 4월 - 구산학원 감사로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49년 윤7월 23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9년 윤6월 9일 - 손자 추무호, 추성호, 추장호가 묘비를 세움. 비문은 향파 이주홍이 지음[1979년 7월]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활동지 동래은행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묘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정의]

근대 동래부 소속 무청의 무임을 역임한 은행가이자 교육자.

[가계]

본관은 추계(秋溪). 고조할아버지는 장관청 천총과 파총·초관, 별군관청 병방, 별기위청 별장·백총, 작대청 별장, 수첩청 백총을 역임한 추운룡(秋雲龍)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추석민(秋碩民)이다. 할아버지는 장관청 파총, 별기위청 별장을 역임한 추성조(秋聖祚)이며, 아버지는 추병주(秋秉周)이다. 어머니는 장관청 중군과 천총, 별군관청 행수, 부청(府廳) 선생, 가덕진(加德鎭) 수군첨절제사를 역임한 이우성(李雨成)의 딸인 안산 이씨(安山李氏)이다. 부인은 장관청 천총·파총, 별군관청 병방, 작대청 백총, 집사청 집사, 운도당 기지구관(旗知彀官)을 역임한 서우진(徐禹鎭)의 딸인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아들은 추교인(秋敎仁)이다. 추종엽(秋鍾燁)의 가계는 조선 후기 동래 지역 대표적인 무임(武任) 집안이다.

[활동 사항]

추종엽은 1874년 11월 12일 태어나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읍 교동 279번지[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서 살았다. 동래부 소속 무청인 장관청 파총과 초관을 역임하였다. 『동래군지』[문기주(文綺周), 동래향교, 1937]의 ‘음사(蔭仕)’ 항목에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1906년 3월 기영회 회장 송상종(宋商宗)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삼락학교(三樂學校)는 동래부 수면(首面)[읍내면] 대표자들의 총의가 반영되었는데, 1907년 1월 작성된 「수면노소신사총회 완문(首面老少紳士總會完文)」을 작성할 당시 수석 회원은 모두 104명으로 추종엽도 포함되어 있다. 추종엽은 1907년경 동래부 수면에 설립된 사립 여학교 정정의숙(貞靜義塾)의 설립 취지에 찬동하여 찬조금을 기부하였고, 1907년 일본에 유학한 학생 21명이 단지(斷指) 혈맹한 일에 대하여 동래 부윤 김교헌(金敎獻) 등이 발기하여 학자금을 모집하는 취지서를 작성하여 의연금을 모집하자 1환(圜)을 기부하였다.

1911년 5월 25일[음력] 작성된 「부산부 봉래일기계(蓬萊一紀契) 취지서」를 보면 발기인 30명에 추종엽도 포함되어 있으며, 봉래일기계 제2기 영업 보고서를 보면 재무를 맡고 있었다. 1918년 설립된 동래은행의 발기인을 역임하였다. 1918년 9월 14일 영업을 시작한 동래은행에서 1918년부터 1923년까지 취체역 전무[전무 이사]를, 1923년부터 1932년까지 취체역 두취[대표 이사]를 역임하는 등 추종엽동래은행의 대주주였다. 1933년 7월 20일 동래은행은 호남은행에 흡수, 합병되어 해산되었다. 동래은행 최대 주주의 한 사람이었던 추종엽은 이후 호남은행 신주(新株) 80주를 소유하였다.

1923년에는 민립 대학 설립 발기인이 되어, 1940년 2월 10일 조선총독부에 재단법인 구산학원(龜山學院) 설립 인가 신청서를 제출할 때 신청인 오태환(吳泰煥) 등 8명과 함께 신청인이 되었다. 1940년 4월 20일부터 1948년 4월 19일까지 구산학원 감사를 역임하였다. 재단 설립 때 3,000원을 재단 재산으로 기부하였다. 1949년 윤7월 23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1937년 9월 할아버지 추성조의 묘[증 가선대부 공조참찬 추계 추공지묘(贈嘉善大夫工曹參贊秋溪秋公之墓)]의 비문을 지었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동래 문화 회관 입구 산기슭에 있다. 묘비명은 ‘추계 추공 종엽 선생의 묘’이다. 묘비는 1979년 음력 윤6월 9일 손자 추무호, 추성호, 추장호가 세웠다. 묘비문은 1979년 7월에 부산 지역 대표적인 문인인 향파(向波) 이주홍(李周洪)이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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