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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좌천리 감선의연부인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345
한자 釜山港佐川里減膳義捐婦人會
영어의미역 Gamseonuiyeon Women's Society in Busan Port Jwacheon-ri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최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 운동 단체
설립자 부산 좌천리 여성[숙부인 장씨]
설립 시기/일시 1907년 4월 17일연표보기 - 창립
해체 시기/일시 1907년 7월연표보기 - 해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7년 1월 - 국채 보상 운동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정의]

1907년 4월 부산 지역에서 설립된 국채 보상 운동 관련 여성 단체.

[개설]

1907년 일본에 빚진 1300만 원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을 때 부산항 좌천리에서 발기 조직된 부산항 좌천리 감선의연부인회에서는 숙부인 장씨[박정회의 처] 등이 중심이 되어 아침저녁 반찬값을 매일 3~4푼씩 아껴서 국채 보상금에 충당하자는 취지에서 조직된 단체이다. 의연금 모금 활동을 하였고 모금된 금액은 국채 보상소에 기부하였다. 1907년 7월에도 2회에 걸쳐 의연금을 출연한 것으로 보아 그 때까지 활동하였으며, 이후 국채 보상 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쇠퇴하면서 부산항 좌천리 감선의연부인회의 활동도 중단된 듯하다.

[설립 목적]

부산항 좌천리 감선의연부인회는 「부산항 좌천리 부인회감선의연 취지서(釜山港佐川里減膳義捐趣旨書)」에서 남녀동등의 의무를 내세우고 있다. 즉 남자만 국민이 아니라, 여성도 같은 국민으로 국가 보전의 의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살림살이를 절약하여 조그마한 돈이라도 모아 여성들도 국권 회복에 동참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채 보상 운동에 여성 참여의 당위성을 제시한 뒤 매월 살림을 절약하여 적은 돈이라도 모아 국채를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취지에 따라 절미 감찬(減饌)의 근검절약을 추진하였다. 국권 회복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단체를 발기하는 날 20명이 의연금 4원 90전을 내었으며, 이후에도 계속적인 활동을 하여 같은 해 7월 중에도 2회에 걸쳐 의연금을 출연하였다.

[의의와 평가]

여성들이 공익적 목표를 위하여 스스로의 조직을 결성한 최초의 사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항장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조직 결성과 적극적 참여는 가정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삶의 영역을 극도로 제한받았던 여성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 그 후 다양한 여성 단체들이 출현하여 활동을 펼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성들은 신분과 계층을 초월하여 초기 단계부터 국민 평등 의식을 갖고 참여했으며, 남녀 차별을 없애고 나아가 남녀동권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채 보상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참여와 활동에는 전통적인 남존여비 사상, 남성 우위의 윤리관과 생활습관에 대한 도전이라는 면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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