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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515
한자 朴生光
영어음역 Bak Saenggwang
이칭/별칭 내고(乃古)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강선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국화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4년 8월 4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4년 - 진주제일보통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17년 - 진주농업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3년 -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4년 - 진주농업학교 수료
수학 시기/일시 1926년~1928년 - 교토회화전문학교 수학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제9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서양화 「소묘」로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조선 미술 전람회에 동양화 「채포」로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일본 동경 은좌종방에서 첫 개인전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제27회 일본 원전에 「가을」을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귀국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진주 문건 화랑에서 개인전
활동 시기/일시 1956년 12월 10일~12월 15일 - 부산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61년 12월 9일~12월 18일 - 부산 내쇼날 다방에서 개인전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박생광 동양화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진주에서 서울로 이주
활동 시기/일시 1972년 - 부산 동원 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74년 - 부산 남도 화랑에서 초대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75년 - 동경 채호당·상업은행 본점·한국문화원 등에서 개인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77년 - 부산 원화랑 개관 기념전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마산 동서 화랑에서 개인전
몰년 시기/일시 1985년 7월 18일연표보기 - 박생광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 - 1주기 회고전
추모 시기/일시 2003년 6월 26일~7월 5일 - 박생광 특별전
특기사항 시기/일시 1974년 - 일본미술원 원우가 됨
출생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
거주|이주지 일본
거주|이주지 진주
거주|이주지 서울
학교|수학지 교토회화전문학교 - 일본 교토
활동지 부산
활동지 진주
활동지 서울

[정의]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활동 사항]

박생광(朴生光)[1904~1985]은 1904년 8월 4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서 진주제일보통학교·진주농업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회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농업학교를 수료하였다. 창작 초기인 1930년 제9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서양화 「소묘」로 입선을 하고, 다음 해인 1931년 조선 미술 전람회에 동양화 「채포」로 입선을 하는 기량을 보여 주었다. 1932년 일본 도쿄 은좌종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40년 제27회 일본 원전에 「가을」을 출품하였다. 1945년 25년간의 일본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후 1949년 진주 문건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부산에서의 활동은 1956년 12월 10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미국공보원에서 가진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 1961년 12월 9일부터 18일까지는 부산 내쇼날 다방에서 박생광전을, 1965년에는 상업은행 부산지점 2층 화랑에서 박생광 동양화전을 개최하였다. 1967년 진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하였지만, 1968년 부산시 전시관에서 박생광 동양화전을 개최하고, 1972년 부산 동원 화랑, 1974년 부산 남도 화랑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다. 1975년에는 동경에서 채호당·상업은행 본점·한국문화원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77년 다시 부산에서 원화랑 개관 기념전을 열고, 1978년 마산 동서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박생광은 타 지역 활동에 비해 부산에서 작품 발표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경상남도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하여 부산의 대표 작가로 거론되고 있다.

1968년 부산에서 열린 개인전을 보고 김강석(金剛石)은 ‘일본화적인 기풍을 다분히 지닌 강력한 운필을 골격으로 한 사의적 수묵화’로 평가하면서 “분채·석채·금박을 사용한 채색화에서 보다 체질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박생광은 1979년 「십장생」 제작을 계기로 민화를 시도하면서 기존의 수묵이나 일본 화풍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특히 1980년 작품인 「무속」은 무속과 민화가 결합된 작품으로 그의 전형적인 채용 기법을 보여 주는 작품 중 하나였다. 선명한 주황과 청색이 대비를 이루어 화면 전체가 강한 기세를 보여 주고 있다. 칼을 든 신장과 부적, 달과 색, 전통 문살 등이 주 소재를 이루고 있는데, 무녀를 다루고 있는 다른 작품과 달리 강고한 현실에 대응하는 서민의 의지를 강하게 담고 있는 형상으로 역사화에 대한 기저를 찾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전봉준」, 「명성황후」 등 역사적 소재를 다룬 작품을 발표하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박생광의 형식적 특징과 내용이 잘 드러났기 때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강선학은 『현대 한국화의 해석 지평』에서 “민화와 무속화, 탱화가 겹쳐지면서 생기는 변형에 의해서 증식되는 형상 즉,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유로부터 무속적 사유로 이동하는 것에 주목했다.”고 하였다. 또 ‘화면 내에 시공을 초월한 소재들이 어떻게 원래의 형상에서 색과 선으로 해체되고 서로 연결되어 화면의 구조로 증식되는가’ 하는 구조적 입장과 그 구조에 의해 증식되는 의미를 박생광의 형식적 성취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박생광이 십장생과 민화의 구성 원리에 주목하고 무속 세계를 그와 같은 경지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은 현실 구복과 내세의 복락에 대한 염원과 다르지 않으며, 무속과 민화가 서민의 일상에 연관된 염원이라는 점에서 박생광의 현실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박생광의 작품이 주는 시각적 접근력은 십장생을 중심으로 무속과의 통교적 이해로 현실의 삶이 가진 비원을 표현하는 데 있다. 형식적으로 이질적 시공간을 하나의 세계로 수용, 불교와 무속의 세계관을 자신의 방법이자 내용으로 승화시켜 내고 있다. 박생광은 1985년 7월 18일에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묘」[1930], 「채포」[1931], 「토함산」[1981], 「무녀」[1981], 「열반이 청담대종사」[1981], 「꽃가마」[1983], 「전봉준」[1985], 「명성황후」[1984]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30년에 제9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서양화 「소묘」로, 1931년 제10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동양화 「채포」로 입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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