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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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誠煥 |
영어음역 | Jo Seonghwan |
이칭/별칭 | 경범(敬範),해산(海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11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서용태 |
[정의]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활동한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자는 경범(敬範), 호는 해산(海山). 남강(南崗) 조정환(曺正煥)의 동생이다. 조정환은 민국독립단의 자의부장(諮議部長)을 지냈으며,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 다물단을 조직하는 등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과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조정환의 아들은 제헌 국회 의원을 지낸 조규갑(曺奎甲)이다.
[활동사항]
조성환(曺誠煥)[1880~1968]은 1880년(고종 17)에 녹산 분절 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114번지]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어디에서 수학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조성환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안창호(安昌浩), 이승만(李承晩) 등과 교우하였으며 미국에서 캘리포니아대학을 졸업하고 경제학사가 되었다. 이후의 행적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전부터 교류하던 이승만, 안창호 등과 함께 독립 운동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성환은 미국에서 이승만, 안창호 등과 독립 운동을 하던 중 1927년 형 조정환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나의 일편단심은 조국 하늘의 해와 달 같은데/ 내 몸은 중국 땅에 묻히는구나/ 이제 인간사를 뿌리치고 정리해 버리니/ 오늘 아침이야말로 독립의 해로구나[丹心韓日月 白骨漢山川 卸却人間事 今朝獨立年].”라는 우국의 시 한 수가 적혀 있었다. 조정환은 이 편지를 남긴 뒤 만주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조성환은 1968년에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조성환의 묘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립 묘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