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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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窺峰-望父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화평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현서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규봉과 망부석」 『보령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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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화산마을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화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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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고성 이씨 |
모티프 유형 | 망부석|망주석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화평리에 있는 규봉과 관련한 이야기.
「규봉과 망부석」은 규봉(窺峰)과 관련된 풍수설로, 고성 이씨의 무덤 이야기도 함께 전승되고 있다. 규봉은 풍수학(風水學)에서 숨어서 엿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안산(案山)을 가리키며, 이런 산이 있으면 화(禍)를 입는다고 한다.
「규봉과 망부석」은 1991년 보령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보령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이야기이다. 규봉이 보이는 곳에 한 사람이 묘를 썼다. 가난하게 살다가 금을 캐 부자가 되었으니, 돌아가신 아버지 묘를 호화롭게 꾸미기 위해 망부석을 마련하였다. 그가 망부석을 세우고 돌아오자, 초상집에서는 선돌에 사는 한 처녀가 집을 뛰쳐나갔다고 수군거렸다. 그 후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는 아버지 묘 곁에 묘를 쓰고 망부석을 멀리서 운반해 왔는데, 여자 무덤에는 망부석을 세우지 않는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라 망부석을 세우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눕혀 놓았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니 화산마을에 사는 한 도령이 집을 뛰쳐나갔다고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이 사건을 망부석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그 후 화산마을 뒷산 화양봉이 명당자리라고 한 양반 집안에서 묘를 썼다. 이후에도 큰 묘지가 생기면 망부석이 자주 세워졌는데, 망부석을 세울 때마다 화산마을 총각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마을을 뛰쳐나가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산에 올라 망부석 두 개를 쓰러뜨렸다. 그러자 선돌에서 처녀 두 사람이 마을을 뛰쳐나갔다고 야단들이었다.
묘지의 주인은 집안사람이 죽을 때마다 이곳에 묘를 썼고, 망부석을 세웠다. 망부석을 세우자 화산마을에는 두 사람이 또 마을을 뛰쳐나갔다. 화산에서 이런 불행이 계속되자 고을 원님에게 묘는 쓰되, 망부석은 세우지 말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지만, 세도가의 집안이라 원님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사들이 산골짜기로 몰려오더니 묘를 파헤치며 망부석을 마구 때려 부쉈다. 그리고 부서진 망부석을 땅에 쓰러뜨리고 파묻었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화산과 선돌마을에서는 마을을 뛰쳐나가는 총각도 처녀도 없었다. 그 자리에 묫자리를 잡았던 가문은 고성 이씨의 가문이었다. 인조반정의 공신 이괄(李适)[1587~1624]이 그 후 난을 일으켜 역적으로 몰려 묘를 파헤치고 망부석을 때려 부순 것이다. 묘와 망부석을 없앤 후에는 고성 이씨 후손들은 이곳 가까이 와 성묘하고 가면 모두 죽는다고 해서 삼곡리 월현고개에서 절을 하고 간다. 규봉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묘를 쓰면 액운이 돌아온다는 풍수설이 너무나 들어맞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규봉과 망부석」 이야기에서 망부석은 망주석(望柱石)[다른 명칭은 석망주(石望柱)이다. 세종 시기까지는 ‘전죽석(錢竹石)’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혹자는 망두석(望頭石) 또는 망부석(望夫石)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을 가리킨다.
망주석은 조선 초기에 거의 왕족이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일반인에게도 수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망주석은 묘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게 한 표지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망주석의 기능에 대해 영혼이 무덤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든지, 지기(地氣)를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든지, 남근(男根)의 상징물로 보고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든지 등 망주석과 관련한 다양한 속설이 전해진다.
「규봉과 망부석」은 망주석의 속설들이 규봉과 고성 이씨의 묘 이야기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같은 지역[보령시 주산면 화평리]에서 「규봉」이라는 이야기가 전승되는데, 망주석의 이야기가 삭제되고 고성 이씨의 무덤 이야기만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