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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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茂松尹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 시기/일시 | 15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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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무송 - 전라북도 고창군 |
입향지 | 무송 윤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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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문헌사(文獻祠)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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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윤양비(尹良庇) |
입향 시조 | 윤순(尹洵) |
윤양비를 시조로 하고 윤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무송 윤씨(茂松 尹氏)는 무송(茂松)[현재 전라북도 고창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본관의 시조는 고려 예종 대 보승낭장(保勝郎將)을 지낸 윤양비(尹良庇)이다. 이후 무송 윤씨는 고려 시대에도 뛰어난 학자와 훌륭한 신하들을 배출하였다.
윤양비의 증손자인 윤택(尹澤)[1289~1307]은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고,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윤소종(尹紹宗)[1345~1393]은 뛰어난 유학자로서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였다. 조선 건국 후 윤소종의 아들인 윤회(尹淮)[1380~1436]는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으며, 세조 대 이시애(李施愛)[?~1467]의 난을 진압하고 난 뒤 영의정을 역임한 윤자운(尹子雲)[1416~1478]도 무송 윤씨 집안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후 14세손인 윤순(尹洵)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으로 입향하였다.
1599년(선조 33) 14세손인 윤순이 남포현으로 입향하면서 지역에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한 입향 사유를 알 수는 없지만, 입향 시기가 임진왜란 직후인 점을 고려하면 전란으로 인하여 살던 한양을 떠나서 피난 중 남포현으로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통계청 성씨·본관별 인구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무송 윤씨는 126명으로 파악되었다.
무송 윤씨의 사당인 문헌사(文獻祠)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에 자리하고 있다. 문헌사 앞에는 업적을 기리는 사적비도 있다. 본래 1494년(성종 25)에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홍죽리에 부조묘(不祧廟)[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로 건립되었으나, 양주에 사는 윤자운 후손들이 점차 지역에서 쇠퇴하면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1725년(영조 1)에 웅천읍 소황리 지역에 사는 윤자운의 후손들이 위패를 모셔다가 재건립하였지만, 사당 위치에 군사시설이 들어오면서 1992년에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