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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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隍堂 |
영어음역 | Seonghwangdang |
영어의미역 | Village Shrine |
이칭/별칭 | 서낭당,서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집필자 | 김지욱 |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 놓은 제당.
성황당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 놓은 신당이다. ‘서낭당’, ‘서낭’이라고도 한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안산 지역에서는 잿머리성황당과 군자성황당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성황당은 성읍을 수호해주는 수호신앙으로 중국 북제시대(北齊時代)에 출현하여 송대(宋代)에 크게 번창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문종 때라고 한다. 이때부터 각 주부현(州府縣)마다 성황을 위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수호신으로 호국이라는 의미를 담아 국행(國行)과 민간에서 신앙하였다.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우리 고유 신앙인 ‘서낭’을 한자로 ‘성황(城隍)’으로 기록하게 됨으로써 양자가 쉽게 융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황당은 기와지붕에 잘 지은 당집이거나, 한 칸 규모의 소박한 당집에 ‘성황당’, ‘서낭당’ 이라고 현판을 달기도 한다. 그 안에는 토지지신(土地之神), 성황지신(城隍之神) 등의 신을 모시고 있으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제의를 행한다. 그 외에 마을 어귀에 위치하면서 하당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는 서낭당을 포함하면 그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서낭나무에 잡석을 쌓아 놓은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神樹)에 백지나 청색·홍색·백색·황색·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잡석을 쌓아 놓은 누석단 형태,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입석(立石) 형태 등이다.
1. 잿머리성황당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산76번지에 위치한 잿머리성황당은 해봉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3일 오전 10시에 무당들이 중심이 되는 당굿의 형태로 제를 지내고 있다. 일반적인 성황당이 한 마을 단위만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신당(神堂)에서 발생된 것에 반해 잿머리성황당의 유래전설은 독특하다.
고려 제6대 성종[982~997] 때 내부시랑 서희(徐熙)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났는데 꿈에 나타난 혼령[경순왕인 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친정어머니 안씨]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사당을 짓고 제를 지내준 후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다는 이야기이다. 제당에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비(妃) 홍씨와 장모인 안씨를 모시고 있다. 1990년에 현재의 당집을 복원하여 제7회 성곡동 잿머리 성황제를 성대하게 치룬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군자성황당
안산시와 시흥시 경계에 위치한 군자봉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군자성황당은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성황신]을 모셔 놓은 신당으로, 매년 음력 10월 초 3일에 제를 지낸다. 서낭신을 맞이한 후 산 아래에 있는 당(堂)에서 김부대왕(金傅大王)[경순왕]을 비롯한 신격(神格)들을 위하는 굿을 벌인다.
군자성황제는 고려 초기부터 거행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관련된 유래가 있다. 군자성황당은 시흥·안양·안산 지역은 물론 전국의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다. 그 외 안산 지역의 마을 공동체 신앙은 산신제가 주를 차지하고 도당제·당제·정제 등이 전승되고 있다. 상록구 일동 응달말에서 서낭제가 있었으나 1978년에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