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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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千福 |
영어음역 | Gim Cheonb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진각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천복은 1898년(고종 35) 당시의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률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천복은 안산 지역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자 4월 4일 당시 시흥군 군자면사무소가 있던 거모리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다. 4월 4일 오전 11시경 주재소 부근에 약 1,000여 명이 집합하였다. 이미 3일 “거모경찰관주재소 및 군자면사무소를 불 질러 부숴버리자.”라는 격문이 각 동리에 배포되었으며, 이 첩지(貼紙)가 하루 전에 일본 경찰에게 발견되어 영등포로부터 순사 6명, 군인 7명이 무장하고 이를 막기 위하여 파견되어 있었다.
김천복은 동리 사람들을 설득하여 이장 집에 모이게 한 다음, 이들 30여 명을 이끌고 거모리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가는 중에 총소리가 나자 일부 주민이 흩어지기도 하였지만 주민들과 함께 길을 우회하여 만세 시위에 합세한 뒤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