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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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世鳴 |
영어음역 | Ryu Semyeong |
이칭/별칭 | 이능(爾能),우헌(寓軒),유세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부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능(爾能), 호는 우헌(寓軒). 증조할아버지는 류운룡(柳雲龍), 할아버지는 류기(柳䄎), 아버지는 류원리(柳元履)이다. 부인은 함창(咸昌) 김요익(金堯翊)의 딸이다.
류세명(柳世鳴, 1636~1690)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75년(숙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8년(숙종 5) 예문관검열을 지낸 뒤 사관과 이조좌랑을 거쳐 1689년(숙종 15) 사헌부지평·홍문관교리·사간원헌납을 역임하였다. 1689년 3월과 윤3월 두 차례에 걸쳐 홍문록에 등재되었으며, 12월 사가독서(賜暇讀書: 젊은 인재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를 하였다.
공충도도사(公忠道都事)로 있을 때 서천군수의 비행을 탄핵하여 파면시키어 도내가 숙연하였고,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는 부교리 민창도(閔昌道)와 함께 노론의 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김석주(金錫胄)에 대한 엄벌과 민정중(閔鼎重)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차자(箚子)를 올려 민정중을 뒷날 벽동(碧潼)으로 유배하게 하였다.
재종숙인 류원지(柳元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황 이후 이기론(理氣論)의 엇갈린 학설을 류원지가 절충했고, 류원지의 문하에서 전수된 도학의 뜻이 류세명에게서 밝아졌다고 평한다. 류세명은 읽지 않은 글이 없다고 할 만큼 많은 책을 섭렵하였고, 궁리하지 않은 이치(理致)가 없다고 할 만큼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였으며, 늘 혼자서 자신을 성찰하는 공부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우헌집(寓軒集)』 8권 4책이 전한다. 1684년(숙종 10) 강원도도사로 재직하던 때 지은 『관동록(關東錄)』(50제)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편지는 이현일(李玄逸)·이담명(李聃命)·김성구(金聲久)·김방걸(金邦杰)·홍만종(洪萬鍾)·이유장(李惟樟) 및 형제들과 조카, 자녀에게 보낸 것으로 류세명의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다.
묘소는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증산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