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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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會運 |
영어음역 | Gim Hoeun |
이칭/별칭 | 형만(亨萬),월오헌(月梧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추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형만(亨萬), 호는 월오헌(月梧軒). 할아버지는 추촌(秋村) 김익한(金翼漢)이고, 아버지는 김시진(金始晋)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咸安趙氏)로 사인(士人) 조경발(趙景潑)의 딸이다.
김회운(金會運, 1764~1834)은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추월리에서 태어나 김도행(金道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2~13세에 경사를 통독하였고 시부(詩賦)에 능하였다. 20세 때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진취(進取)에 급급하지 않고 김도행과 김만유(金萬裕) 두 문하에서 성리서에 전념하고 후진을 교도하여 학문을 강론하고 문예를 장려하였다. 김회운은 용모가 단정하고 배운 바를 몸소 행하고 견해가 정확하며 수양이 깊었다. 또한 겸허하고 은약(隱約)하여 의관이 진솔하고 말씨가 과묵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월오헌집(月梧軒集)』 4권 2책이 있다. 이 가운데 잡저 「사문문견록(師門聞見錄)」은 류장원(柳長源)의 문하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바를 적은 글이다. 이현일(李玄逸)·김성탁(金聖鐸)·류범휴(柳範休) 등에 대한 제문에서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당시 점차 팽창 추세를 보이던 실학(實學)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송석(松石)마을 선영에 있다.